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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Q & A

24.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by lawlaw's 2020. 8. 1.

저는 가끔 "아~ 이런 느낌의 그림을 갖고 싶다.", "이런 느낌의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어떤 이미지나 영감이 갑자기 떠오를 때,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그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재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 낸 이미지를 내가 생각한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부탁해서 소정의 대가를 지급하고 그려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문득, 그렇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그림을 받고 나면, 그게 내 그림일까, 그 그림을 그린 작가님 것일까.

궁금해졌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디어 그 자체표현, 둘 중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나 하는 문제가 생각할 수록 참 애매한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좀 지켜봤던 사건이 있는데,

바로 '조영남 씨 대작(代作)'사건 입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약 한 달 반쯤 전에 대법원에서 조영남씨에게 무죄판결(2018도13696판결)을 선고했고, 그 판결은 확정되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조영남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에게 작품 1점당 10만원씩을 주고 기존의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조영남씨가 그 화가에게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그림을 그려오라고 합니다.

 

조영남씨는 그 화가가 90%정도 그려 온 그림에 약간의 덧칠을 하고 조영남씨 자신의 서명을 넣은 후, 그림 21점을 17명에게 팔아 약 1억8,000만원 정도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이에 대해 조영남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후에, 1심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1심 법원은 "작품을 온전히 조씨의 창작적 표현물로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이 예술성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믿고 있던 대다수 일반 대중과 작품 구매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실망감을 안겨 줬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는데요.

2심 법원은 "이 사건 미술 작품은 화투를 소재로 하는데, 이는 피고인의 고유 아이디어"라며 "조수인 화가는 피고인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미술사적으로도 도제 교육의 일환으로 조수를 두고 그 과정에서 제작을 보조하게 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이를 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상고심인 대법원은 지난 6월 28일 조영남씨와 검찰 양측의 주장을 직접 듣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는데요.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은

"구매자들이 조씨의 그림을 고액을 주고 구매한 이유는 유명 연예인인 조씨가 직접 그렸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대작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판매한 조씨의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조영남씨 측은 "대작 화가는 조씨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했을 뿐 저작자라 볼 수 없으며 조씨를 단독 저작자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공개변론 끝에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조영남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한다"면서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이 친작(親作)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되었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들이 미술작품을 조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위 사건에서 조영남씨는 "내가 직접 마지막 (붓)터치를 했고 사인을 했기 때문에 내 작품"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일부 그림을 그리는데 초안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사는 사람에게 일일이 고지할 의무는 없다"며 "예술의 자유를 국가 형벌권으로 제한할 것인지 면밀히 판단해달라"며 강하게 무죄를 주장했다고 하네요.

 

또, 피고인 신문에서 조영남은 "팝아트에서는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시한다. 화투를 그리는 것을 팝아트로 보고 저 스스로 팝아티스트라고 한 것"이라며 "제가 (화가에게) 화투를 그리라고 한 것이니까 당연히 제 작품이 맞다"고 주장했다는 군요.

 

 

 

그런데, 위 사건과 관련해서 예술계에서는 아직 작품의 저작권 또는 소유권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가분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있었는지,

과연 대작을 하는 것을 협업이라고 볼 수 있는지, 협업을 했다면 작가를 함께 표기를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근대에 있었던 도제관계가 아직도 미술업계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지 등등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은 논의들이나 논쟁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